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맡은 엑스맨 영화 시리즈의 처음 두 편은 원작 팬들에게는 거대한 선물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노란색 스판덱스 쫄쫄이 유니폼은 사라졌지만, 싱어는 다양한 뮤턴트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려냄과 동시에 원작의 주제의식을 무게감있게 호소했다. 하지만 싱어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면서 세 번째 작품의 연출은 브랫 라트너에게 돌아갔고, 그는 엑스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을 볼 거리에 치중한 오락영화로 마무리 지었다. 라트너의 엑스맨은 비스트와 엔젤을 포함한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인기 캐릭터들을 대거 투입하며 이전 시리즈의 수준을 상회하는 특수효과와 대규모 전투신을 선보였지만, 그 밖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는 전작들의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엑스맨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울버린을 주연으로 내세운 시리즈 첫 스핀오프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안타깝게도 라트너가 감독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닮았다. 전작들에서 매우 약하게 묘사되었던 울버린과 세이버투쓰의 라이벌 구도가 부각되고, 갬빗, 데드풀 등 영화 시리즈와는 인연이 없었던 인기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시리즈 팬들이 반길만한 몇몇 요소들을 제외한다면 딱히 장점을 뽑아 내기가 어렵다.

 

울버린과 세이버투쓰가 형제(!)라는 시리즈 팬이 보면 기겁할 만한 설정까지 끼워 넣었지만 시나리오는 시종일관 상투적이고 식상한 전개를 벗어나지 못하고, 캐릭터 고유의 능력을 활용한 액션 시퀀스도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점은 울버린과 세이버투쓰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것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가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비춘 갬빗은 까메오 출연에 가까워 보이고,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핀오프 코믹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데드풀은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싸이클롭스를 떠오르게 하며 팬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일회성 개그 캐릭터로 소모된 블랍에 이르면 캐릭터들을 절묘하게 조율하던 싱어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엑스맨 시리즈의 계속된 흥행에 고무된 마블은 이미 2011년 개봉을 목표로 매그니토의 스핀오프 제작을 진행하고 있으며,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엔딩 클립에서 울버린 스핀오프의 속편과 데드풀의 스핀오프 제작을 암시했다.(1) 엑스맨을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야 속속 들려오는 영화화 소식이 반가울 수 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데어데블]의 스핀오프였던 [엘렉트라]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마블 코믹스 원작은 아니지만 한참 상종가를 치던 할리 베리를 주연으로 기용하고도 처참한 실패를 거둔 [캣우먼]의 예도 있지 않은가.

 

 

주 1) 실제로 울버린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언 레이놀즈가 MTV 인터뷰에서 데드풀 스핀오프가 제작될 것이라 언급했다.